1. 파이어의 진짜 시작은 ‘그 이후’부터
많은 사람들은 파이어(FIRE)를 목표로 삼고 달린다. 하지만 나는 그 시점은 종착점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일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로운 삶이 시작된 지금, 나는 그 시간을 단지 소비하지 않고 ‘내 인생의 두 번째 시즌’으로 설계하고 싶다.
단순히 쉬는 시간이 아니라, 더 본질적이고 창의적인 나를 구축해나가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10년 프로젝트를 만들기로 했다. 이 10년은 내 인생 후반전을 위한 토대이자 실험장이 될 것이다.
2. 첫 3년: 멈추고, 회복하고, 관찰하기
처음 3년은 회복의 시기로 정했다. 그동안 지쳤던 몸과 마음을 쉬게 하고, 충분히 나 자신을 돌아보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매일 1시간 산책하기, 스마트폰 없는 오전 보내기, 명상과 독서 루틴 만들기, 무계획의 여행을 떠나보기 등 외부 자극을 줄이고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시간을 보낼 것이다. 이 기간은 성취보다는 느끼고 회복하는 것이 목적이다.
나는 내가 어떤 삶을 원하는지 알아야 그다음 단계를 더 잘 설계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이 시기는 단순히 휴식이 아닌, 자기 관찰의 시간이다. 내가 에너지를 잃는 순간은 언제인지, 무엇을 할 때 가장 편안한지, 어떤 환경이 나에게 영감을 주는지를 세심히 기록하고 정리할 것이다. 이 경험은 이후의 선택에서 방향을 잃지 않도록 나침반 역할을 해줄 것이다.
3. 4~6년차: 나만의 일을 실험하는 시기
이제 다시 창조의 시간이다. 꼭 돈을 벌지 않아도 좋다. 그저 내가 좋아하는 일을 깊이 해보는 기간이다. 글쓰기, 인터뷰 콘텐츠 만들기, 책 출간 기획하기, 커뮤니티 운영하기, 나만의 팟캐스트 제작, 다양한 온라인 클래스 수강, 봉사활동이나 공익 프로젝트 참여 등 다양한 실험을 해볼 생각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돈보다 의미’, ‘성과보다 성장’. 실패해도 괜찮다. 오히려 실패를 통해 나에게 맞지 않는 일과 환경을 걸러낼 수 있으니, 이 시기는 시행착오를 환영하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이 시기엔 한 가지 프로젝트에만 몰두하기보다는, 관심사를 폭넓게 탐색하면서 자기 확장을 시도하는 것이 목표다. 지금은 내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연결되고 싶은지를 탐색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4. 7~10년차: 작은 브랜드를 만들어가기
실험이 끝나고 나면, 내가 지속할 수 있는 일을 하나의 브랜드로 발전시키고 싶다. 이름을 붙이고, 철학을 담고, 조금씩 사람들과 나누는 것. 작고 조용해도 좋다. 중요한 건 내 삶이 어떤 방식으로든 ‘나로부터’ 시작되는 일이라는 점이다. 이것이 나만의 독립적이고 지속가능한 라이프워크다.
내 브랜드는 단순한 수익 구조가 아닌, 삶의 방향성을 담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느림의 미학'을 주제로 한 온라인 커뮤니티, 책과 글을 중심으로 한 출판 프로젝트, 혹은 자연과 철학을 잇는 산책 모임 등도 가능하다. 이 브랜드는 내가 세상과 소통하는 창이자, 나 자신에게 책임을 부여하는 장치가 될 것이다. 일과 삶이 분리되지 않고, 일하는 방식 자체가 곧 나다운 삶이 되기를 바란다.
5. 관계에 투자하는 10년
파이어 이후 나는 관계의 밀도에도 신경 쓰기로 했다. 얕고 넓은 관계보다 깊고 따뜻한 관계. 가족과의 시간, 진심이 오가는 친구와의 대화, 새로운 공동체에서의 활동들. 인맥이 아니라 ‘연결’을 추구하는 삶을 살고 싶다. 내가 만든 프로젝트 안에서도 이런 인간적인 연결을 계속 품고 가고 싶다.
특히 새로운 관계에 너무 조급해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의 관계를 더 깊게 만드는 것, 오래된 친구와의 재회, 함께 걷는 산책, 편지를 쓰는 일 등이 관계의 밀도를 만들어줄 것이다. 인간관계는 삶의 에너지이자 영감의 원천이다. 고립된 성공보다, 관계 속에서 이뤄낸 평온함이 훨씬 더 오래 남는다.
6. 공부는 끝나지 않는다
자기계발도 빠지면 안 된다. 파이어는 단지 쉬는 것이 아니라 더 깊이 있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다. 매년 한 가지씩 새로운 주제를 정해 탐구할 계획이다. 철학, 환경, 투자, 문학, 음악, 수공예, 외국어, 심리학 등 흥미와 호기심이 가는 대로.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사고의 확장’을 목표로 한다.
특히 '천천히, 깊게 읽기'를 실천하며 단순히 정보를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사유하고 정리하는 훈련을 하고 싶다. 온라인 강의 수강, 독서 모임 참여, 리서치 노트 정리 등 학습의 방식도 다양하게 구성할 계획이다. 파이어족으로서의 삶은 소비가 아니라 창조와 배움의 삶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7. 느리게, 그러나 꾸준히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다. 남들보다 빠르지 않아도 좋다. 중요한 건 내가 매일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것. 작은 루틴, 성실한 습관, 정직한 태도. 이 세 가지가 내 10년을 지탱할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매일 아침 30분 글쓰기, 매주 한 번 깊이 있는 대화 나누기, 한 달에 한 권 책 읽기, 계절마다 여행 한 번 다녀오기. 이 모든 루틴은 작아 보이지만, 10년 후 나를 놀라운 지점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느리게 가는 것이 불안할 수 있지만, 방향만 옳다면 그것이 결국 가장 빠른 길이 된다.
8. 나의 생각
파이어 이후의 삶은 막연하거나 비워져 있는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그 속에 내 생애 가장 창의적인 시간이 숨어 있다고 믿는다. 나는 이 시간을 내 마음대로 쓰되, 충실하게 쓰고 싶다. 그래서 이 10년은 단순한 쉼이 아닌 ‘내 삶의 두 번째 설계도’다.
돈을 위해 살았던 30대를 지나, 의미를 위해 살아갈 40대와 50대를 나는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다. 이 10년은 내가 나를 가장 많이 들여다보고, 실험하고, 정돈하고, 다시 펼쳐보는 시간이다. 타인의 속도가 아닌 나만의 속도로,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걸어가는 길. 이것이 바로 파이어 이후, 진짜 ‘나’를 만들어가는 프로젝트다.
나는 지금, 내 삶을 가장 정성스럽게 살아가고 있다.